Dear. J

  너의 선택이겠지만 엄마이자 여자로서 난 너에게 꼭 결혼을 하라고 권하고 싶진 않아. 결혼과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경험은 어디서도 할 수 없는 게 분명하고 그간 살아왔던 것과는 매우 다른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 만들어. 뭉클할 만큼 좋은 것도 있고, 욕 나올 만큼 짜증나는 것. 둘 다 있지. 

사람들은 아이를 낳아야,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는 둥 하는 말을 쉽게 내뱉는데, 그런 말은 믿지 마. 그냥 하는 말이거든. 특히 자기의 삶에 대해 그닥 책임감이 없고, 생각이 없거나 가벼운 사람들은 그런 떠다니는 말들을 자기 생각인 양 말하는 걸 좋아한단다. 결혼을 안 하거나 늦게 하거나 아이를 안 낳거나 하는 사람들은 보통의 사람들이 그런 루트를 따라 가느라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일 때, 그 에너지를 다른 곳에 쓸 수 있지. 예를 들어 자기 자신과 가족에 함몰되는 것 대신, 우리 사회에 필요하고 좋은 일을 하는 것에, 혹은 우리가 사는 지구에, 자연에, 환경에 필요한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엄마가 너무나 사랑하는 음악과 미술 같은 좀 더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것들에 눈을 돌려 자신의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거거든. 뭐든 자신의 선택이야. 네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란다. 그리고 나서 결혼-아이 낳기 등을 선택하면 될일이지. 많은 사람들은 '나'라는 필터를 거치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이 말하고 정해 놓은 대로, 결혼과 출산을 해버리는 것 같아.  

 

엄마가 살고 있는 지금, 2020년은 여전히, 할머니가 살던 시대처럼, 여전히 여자들에게는 힘든 세상이야. 결혼까지는 여자의 주관이 뚜렷하면서 그에 어울리는 남자를 만나면, 자기가 살아오던 패턴을 거의 유지하면서, 큰 변화없이 살 수 있거든.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면서는 그러기가 정말 힘들어. 일단 아이의 주 양육자는 엄마가 되어 버리거든. 네가 살 때에는 좀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아이를 임신하는 순간부터 몸 속에 품고, 낳고, 젖을 먹이고..이 기간이 있다보니, 아빠보다는 엄마가 아이와 더 밀착하게 돼. 그러다보면, 자기가 하던 일은 자기 패턴대로 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가 않단다. 정말 쉽지 않아..... 

난 네가 simple하게, 맘 편히 살려면 혼자 살거나(물론 네가 혼자서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아니면 마음이 잘 맞는 친구(그게 동성이든 이성이든 상관없다.)와 공동 생활을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결혼을 하더라도 요리를 할 줄 알고, 집을 가꿀 줄 아는 '공동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중요해. 정말 할 이야기가 많지만, 오늘은 이만 총총. 새벽 2시 21분이야. 너와 함께 내일 즐겁게 놀려면 자야하거든.

엄마는 여러 가지가 꼬이고 엄마 커리어는 정말 난관에 봉착했단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널 정말 사랑하는 것 같다. 너의 삶이 엄마의 삶보다 좀 더 빛났으면 좋겠고, 네 이름처럼 맑고 기쁘게, 감사하면서 살아나갈 수 있으면 정말 좋겠다. 너를 위해 기도해. 얼른 크렴. 같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