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관계는 잘 나가다가도 조금만 틀어지면 삐끗한다. 갈등의 발발 원인도  주로 비슷한 패턴인데, 무조건 갈등 상황이 벌어지는 1순위는 내가 그에게 쌓여있는 설거지에 대해 '좀 하라!'고 말할 때이다. 요리한 사람은 설거지를 하지 않는다는 내 원칙은 그에게는 영 먹히질 않는다. 그 이유를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오늘 아침엔 남편이 아침을 준비했다. 어젯밤,  내가 요리를 하니 그대는 설거지를 하라는 말에 (차라리) 자신이 음식을 준비하겠다고 화인지 짜증인지 모를 말을 하며 시작된 역할 바꾸기 놀이가 시작된 것이다.

어색하긴 했지만 내가 그보다 더 늦게 일어났고, 눈 뜨자마자 뭘 먹을지를 생각 안 하고 바로 부엌으로 가도 되지 않는다는 게 좋았다. 잠이 덜 깬 눈으로 가스를 켜고 잘 쥐어지지 않는 소스 뚜껑을 열거나 칼을 썰거나 하는 일보다 J 방에 들어가서 꺠려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간질간질, 이야기를 걸며 깨우는 일도 좋았다. 아이 머리를 빗기고 물통에 물을 담는 일까지가 내 일이었는데, 그리고 그 시간 그는 같이 아침밥을 먹거나 샤워를 하며 옷을 입고 책상 의자에 앉아 있는 그림. 나도 그걸 한번 따라해 볼까 하다가 유치하다는 생각에 그냥 관뒀다.  그가 하던 일. 아침에 재이를 셔틀버스에 태워 보내는 일은 내가 했다. 창가에 서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기분이 좋다.

아침 수영을 하고 돌아오면서, 흠.그러면  이따 저녁을 뭘 먹을지, 저녁에 집으로 들어가서 부엌으로 향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지!  하하하! 기분이 좋고 지루한 생활인에서 해방된 느낌이었다. 난 지독히 부엌을 싫어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는 며칠 안 가서 역할 바꾸기 놀이를 하자고 자신이 먼제 제안할 걸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자기 적성을 여기서 찾을지도 모른다. 

결혼 전엔 남편과 내가 동거인으로써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먹고 치우고 하는 그림이 당연히 될 것이라 생각했다. 추호의 의심도 없이. 왜 그랬을까??? 지금도 의문이다. 결혼 10년이 지나고, 미국에서 코로나를 겪으며 난 이제 어느정도 음식을 할 수 있게 되긴 했고, 그는 더더욱 안 하게 되었다. 그냥 어쩔 수 없다하면서 나도 이젠 내가 끼니를 준비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시점이었다. 특히 입 짧은 J가 잘 먹어줄 때, 나름의 보람을 느끼면서. 흠..그런데 이런 순간이 오네. 역시 인생은 알 수 없는 건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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