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29.

 

308 연구실을 떠난다.

물리적으로는 이미 지지난 주에 짐을 정리해서 떠나왔으나 마음은 오늘에서야 떠난다.

 

운이 좋게도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로 계속 연구실이 있었는데,

5년만에 집으로 컴백한 셈이다.

 

두 번에 걸쳐 꽤 많아진 책들과 서류더미들을 집으로 옮겼다.

책장도 2개 사서 베란다에 놓은 후 잘 안 보는 책은 모두 그리로 옮겼다.

 

우석이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 연구실에서 짐 싸고, 옮기고, 풀고, 책장까지 고르고, 조립하고.

그는 지금 정말 물리적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아서 시간이 48시간이어도 모자를 판인데,

내 작은 바람들, 요구들에 귀 기울여주면서, 균형을 잡아가며 이겨나가고 있다.

가끔 그가 매우 피곤해 보이는데, 마음도 지쳐버릴까봐 걱정이 된다. 내가 좀 더 배려해줘야 하는 시기인데....잘 못해주고 있어서 미안하다.

그나마 그를 위해서 기도는 하고 있는데, 행함이 없는 기도가 무슨 소용일까.

 

 

올해는 해님이가 태어나는 빅이벤트가 기다리고 있고,

아무래도 신생아, 유아일 땐 아가와 함께 하는 시간이 중요하니

집에서 공부하고 짬짬이 일하는 습관을 들여야 할 것 같다.(그래서 어제는 다른 방에 따로 놓고 쓸 '집중용 책상' 하나를 더 샀다.)

 

 

골방에서 혼자 신경질을 팍팍 내며 논문/일을 쓰는 습관이라든가,

마감 일자가 다가와 스퍼트를 내며 공부를 한다든가,

적어도 너댓 시간이 통째로 주어져야 뭔가를 손에 잡고 한다든가 하는 나의 오래된 공부 습관을 바꿔나갈 수밖에 없다.

 

수많은 선배들, 일하는 아기엄마들처럼 나도 애가 잘 땐 자야할 것이고,

짬짬이, 정말 짬짬이 시간이 날 때를 부리나케 잡아서 집중해 일을 처리해야 할 거다.

할 수 있을까.

아기가 주는 힘으로 가능할까? 나처럼 게으른 사람이 가능할지....

 

 

우석과 나. 두 사람일 때는 많은 것들이 그래도 예측 가능하고 변주 가능했는데,

해님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될는지 모르겠다. 변수가 너무 많다.

정말 막연하긴 한데, 그렇지만 이 아가의 등장이 굉장히 기대되곤 한다.

막막함과 끝없는 희망의 공존. 아이러니하다.

 

아기를 기다리면서 더욱더 기도하는 마음, 낮아진 마음, 평온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진다.

주여, 제게 엄마로서의 담대함을 주소서.

 

 

오랜만에 논문집을 훑어 보았다.

내 논문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심이 가는 것을 잡지 넘기듯 훑어 보았는데,

탄탄하게 잘 쓴 논문 몇 편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요즘 내 관련 분야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논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코퍼스 자료들을 어디서 모으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논증해 나가는지 등을 보며,

외곽에서 혹은 다른 사람이 안 하는 것을 한다는 식으로 다른 흐름들을 보지 않았던 내 게으름과 오만함(?) 방만함에 부끄러워졌다.

 

과거의 연구 성과를 충분히 이해하고 그 연장선상에서 내 연구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

내 분야를 선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앞에서 쌓아놓은 것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정말 부끄러웠다.

 

 

 

2015. 8. 17. 월요일

 

오늘은 하루종일 집에서 발표 논문을 붙들고 있었다.

 

연구의 목적과 방향이 불분명했었나 보다.

 

문제의식이 분명했다고 생각했는데, 단순한 호기심이었나 보다.

 

목적지가 분명치 않게 무턱대고 덤벼든 결과, 난 결국 길을 잃었다.

 

파편화되어 여기저기 있는 자료들은 목적을 잃고 둥둥 떠다닌다.

 

22일에 발표인데, 아직까지도 글들을 못 꿰고 있다.

 

일면식도 없는 토론자에게는 수요일까지는 꼭 보내준다고, 죄송하다고 해 놨다.

 

부산에 계신 부모님께는 다음 주 목요일에 간다고 전화를 드렸고, 또 죄송하다고 했다.

 

우석에게도 미안하다고 쓰려고 했는데, 우석이 왜 좀 안 좋을 때만 블로그를 하냐며.....ㅎㅎㅎㅎ

 

 

 

새벽이 되니 날씨가 가을마냥 선선하다.

가을이 올 거라고 예고라고 하는 듯.

2015년 여름은 어떻게 기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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