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나이로 마흔.

생물학적 나이로는 서른여덟. 아직은. 그러나 곧 서른아홉.

 

아직도 미생.

어쩌면 죽을 때까지 인간은 완성되지 못한, 미생의 삶을 살아갈지도 모르지만.

자기 잣대에 의해서라도 나는 아직 미생.

 

#1.

요즘 학생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며 그들의 깊이없음 혹은 고민없음, 단편적인 시선들에 경악하자,

젊은 축에 속하는, 아직 인생에 자신만만해 보이는 J는 우리의 잣대로 그들을 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 애들은 학교 이름값 덕분에 쉽게 과외를 구하고, 나름 쉽게 돈을 벌고 대학의 낭만을 나름 즐겼던 우리와는 다르단다.

그들은 이미 사교육 시장에 과외 자리를 뺏긴 지 오래고, 카페나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우리 때보다 사회에 일찍 던져지고, 졸업 후에도 취직자리가 없는 이 아이들에게

대학생활을 즐기라고, 날씨가 좋으니 즐기라는 둥의 말을 하는 건, 한마디로 '쉣'이라고 과격하게 말하는 목소리.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맞는 것인지 사실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래서. 그래서?

이들을 가르치는 업을 택한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인가?

 

B대학교의 면접에서 받은 질문처럼,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뭘 해 줄 수 있나요?"

이런 답변을 해줘야 하나?

 

#2.

요즘 노래들, 빅뱅의 노래를 들으며, 혁오라는 밴드의 노래를 들으며

나와 같은 또래의 10년, 20년 전의 가수들은 위협을 받겠다는 생각을 하다.

요즘 감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빅뱅, 혁오 이런 애들의 노래에는 우리는 못 가진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나를 비롯한 우리 세대에는 자유를 갈망하나 여전히 다양한 기준들과 도달하고자 하는 기성세대에서 물려 받은 틀이 있다.

그리고 그걸 아무리 몸부림치며 깨려 해도, 이미 의식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자유로움이 아니며, 자연스럽지 못한 움직임인데.

 

그들의 자연스러움,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있는, 나의 길에 대한 뚜렷한 색깔과 즐거움.

그래, 그들이 갖고 있는 '자기가 하는 행위에 대한 즐거움'. 그게 부러웠다.

 

나는 어떤 길로, 어떤 좌표로, 무엇을 향해 살아가야 하는지.

무엇이 나에게 맞는 자연스러움일까.

의식의 과잉에 찌들고, 의미의 과잉에 찌들어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3.

불안하다.

아이도 가져야 하고, 학자로서 기반을 쌓아올려야 하고, 태어났으니 이 세상에 이로운 것 하나는 남기고 가야 해서 불안하다.

생각이 많으니 더 게을러지고, 더 피곤해진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요즘이다. 매일매일 그를 사랑했다가 시큰둥했다가 조속으로 변한다.

나를 견뎌내는 그에게 고맙다. 보기보다 무던한 사람이고, 어쩌면 내가 그를 생각하는 것보다 그가 나를 생각하는 크기가 더 클지도 모른다. 나보다 균형잡혀 있고 단단한 사람이다.

그에게 잘해줘야지. 그가 이런 나에게 지치면 큰일이니까.

 

확실히 엄마와 남편은 다른 존재다.

엄마가 나한테 지칠까봐 효도해야지..하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었으니까.

엄마라는 역할을 하게 되면 자식에게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믿음을 주게 되는 걸까?

믿도 끝도 없는 그 사랑과 믿음은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탯줄로 연결되어 있던, 열 달 동안의 동거 때문일까.

 

임신한 여성을 보면 에일리언이 꼭 떠오른다.

살아있는 생명체 안에 또 살아있는 생명체가 들어 있다는 건, 아무리 아름답게 그려보려해도 좀 징그럽다.

외계 생명체, 에일리언.

그 특별한 경험을 여성이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고 지내니, 심지어는 몇 번씩 하기도 하니....

여성으로 태어난다는 것 자체는, 남성보다 유표적이고 특별할 수밖에 없는 삶의 조건을 갖고 있는 셈이다. 

 

 

#4.

학교 조직은 생각보다 구리다.

대학의 실적 주의와 구성원들의 얄팍함, 멋지지 않음, 이기적인 인간들의 집합체, 정의롭지 못하고 용감하지 못한, 말만 번지르르한 집단.

교수라는 직함을 생략하고 동네에서 그 사람들을 만난다면

성격 별로고, 이기적이고, 대화가 아니라 혼자서만 얘기하는 것 좋아하고, 고집 세고, 못 생긴 동네 아줌마 아저씨들일 뿐이다.

인간적으로 매력적인 사람들이 많지 않은 동네가 이 바닥이다.

 

직업으로서 학교는 매우 좋은 조건이다.

일단 긴 방학이 있어서 지금의 나처럼 자기의 자의식을 계속 키울 수 있고, 시간 여유가 있으며, 자기 공부를 할 수 있다.

돈도 보통 이상은 보장되고,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알아주는 직업군이니까.

 

그래서 많은 이들이 어떻게 학자로서 의미 있게 살아갈까보다

어떻게 하면 학교라는 조직에 취직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나보다.

 

학문에 진지한 이들보다

취직 길에 유리하도록 능한 '기술'을 가진 자들이 많은 조직이 되어 가는 이유 중 하나 아닐까.

 

 

이러쿵저러쿵 생각을 해 보면,

현재 내가 목 마른 건, 학자로서의 길을 택했으나 학문적 성과를 못 이루어가고 있다는 데 있다.

 

15학점, 다음 학기엔 18학점의 강의를 해대면서, 내 연구를 계속 해 낼만큼 부지런하지도 못하고 체력이 강하지도 못하다.

취직에 대한 압박감은 연구의 질보다 양에 압박을 주고,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회의하게 만든다.

다 피동, 수동형으로 글을 쓰고 있지만,

다 내가 자초한 일이다.

부끄럽다.

 

계속 공부를 해 나갈 자격이 있는지.

더 이상 논문, 글을 쓴다는 행위가 즐겁지 않다.

 

가르치고 연구하고.

 

지금의 단계를 뛰어넘어야, 학자로서 싹수가 있는지, 잘 해나갈 수 있을지 제대로 보일 것 같다.

좀 더 기다려보고.

 

2015. 8. 13. 

 

 

 

 

 

1.어제 오후 3시30분경 흩날리는 눈을 봤다. 입춘 지나 내리는 눈이니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시상식이나 가수가 노래 부를 때 뿌리는 하얀색 스프레이처럼 눈이 화사하게 내렸고, 사람들이 그 사이를 걸어다니고 있었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학생 둘, 허리가 약간 굽은 조그만 할머니, 시장 앞에서 바쁘게 길을 건너는 아저씨 둘. 흐린 날씨라 그런지 사람들이 입은 옷이 어두워서 그런지, 눈이 더 하얗게 도드라졌다. 화사하고 즐겁게 흩날리는 눈은 주인공이고, 회색빛 사람들과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길거리, 시장, 아파트가 배경이었다.

 

집에 들어와서 학회 발표문이 아니라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또 들었던 어제.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2. 어제 저녁에 아빠(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병원에서 검사를 여러 가지 해 보자고 해서 입원을 했단다. 조금 놀랐으나 아빠 목소리가 의외로 안정감이 있었고, 요즘 병원을 신뢰하고 있는 듯하니 다행이다 싶었다. 안 아픈 사람도 요즘엔 미리미리 돈 백, 이백 들여 종합검진도 하는 마당에, 새해 시작하며 구석구석 종합 검진을 하면 나쁠 것은 없겠지.

 

3. 오늘.

  전체교수회의가 있는 날인데 안 갔다. 꼭 갈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오늘 학회 발표문만 없었더라면 참석했을 거다.

학회 간사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 오전까지 원고를 넘기겠다고 단단히 약속을 했다. 좀 부끄러웠다. 미리미리 안 하고, 꼭 이렇게 닥쳐서 부랴부랴 쓴다.

게으름이 문제다. 게으름이.

 

더 잘 할 수 있는데 말이다.

 

4. 오늘.

학회 간사와 전화를 끊고, 기분이 꿀꿀해서 부쩍 늘어난 흰 머리 몇 개를 족집게로 뽑아냈다. 그러다가 CD를 틀고 공부를 다시 시작할까 해서 둘러보다가 1999년, CD를 발견했다. 뭐였나 싶어서 들어보았다. 예전에도 좋아했고,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곡들이, 꼭 지금 내가 듣고 있던 음악인 것마냥 흘러나왔다.

 

 대중음악 취향과, 대중음악으로 여기는 것들은 1999년이 기준이었나보다.

노래와 함께 아름다웠던 날들로 대학 3학년은 윤색된다. 음악과 추억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그때도 분명 그지같고 지겹고 걱정하고 게으른 것들로 범벅이 되었던 그날들이 있었을텐데,

지지한 일상도 있고, 부끄러운 것도 수없이 더 많았을텐데,

그저 아름다웠던 젊은 그때, 젊었던 너와 나. 우리로 윤색되어 버린다.

 

어쩌면 이렇게 쉽게, 과거는 아름다웠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신기할 정도다.

이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이 생명을 거둬갈 때까지,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도.

 

안정감을 주는 연구실에 도착해서, 오늘 해야 될 것들 리스트를 작성했다.
요새 가장 마음에 와 닿은 곽진언 씨가 편곡한 '당신만이' 노래도 듣고, 혼자 듣기 아까워서인지 뭐인지 페북에도 링크를 걸어두었다.

그러다가...

작두 탄 무당처럼 신명나게 이 세상 살다가 가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다.

 

가을을 타는 것인지 올해가 올해여서인지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에 대한 조급함 때문인지

조금 우울하고 사는 게 조금은 슬프다.

어린 아이를 봐도 그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슬프고,

내 나이 친구들을 봐도 애써 살겠다고 하는 모습들이 슬프고,

나이 많은 사람들을 봐도 그들이 헤쳐온 삶이 슬프다.

 

무엇을 믿고 살아가야 할까.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지금의 나를 말해준다.

 

하늘이가 보고 싶다. 양수리 집에 가서 여유 있게 쉬다 오고 싶은데, 학회 발표문을 써야 해서 쉽게 움직일 수가 없다. 계속계속 어느 기한까지 뭘 해야할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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