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용의 해.

용의 해에 태어났고, 이름도 무관하지 않으니 상서로운 기운이 요동치는구나! 하며 1월을 시작했다.

계획을 크게 잡지 말고, 일단 한 달 살기로 한 달 계획을 세우고 살아가라는 어떤 조언을 유튜브에서 들었다. 그래? 한번 해볼까 싶었다.

이러쿵저러쿵 이리쿵저리쿵했는데, 1월은 재이의 겨울방학과 함께 열심히 놀았다. 또렷이 기억이 안 나는 게 이상하지만, 스케이트도 일주일 타고,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에도 가고, 수영, 그림그리기, 피아노 등등...뭘 많이 하고 놀았다. 몇 번 아이의 친구 엄마들도 만났다. 뭐라고 얘기도 잘 하고 웃고 했는데, 그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 그래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다행이구나 싶다. 내가 인복은 있나보다. 재이와는 24시간 붙어서 말을 엄청나게 했다. 대화라기보다는 주로 재이의 엄청난 이야기를 많이 듣고 반응을 하는 식이다. 나를 닮기도 남편을 닮기도, 그 누구도 안 닮기도 한 이 작은 사람은 신기하고 귀엽다. 하! 감탄을 하게 만들기도 하고. 놀랄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중년이 넘은 우리와 노년의 부모님은 아이를 보며 새로움을 느끼며 웃는다.

-엄마, 난 종이만 있으면 돼. 가장 좋은 장난감이거든. 난 장난감이 이제 필요없어. 종이만 있으면 글씨도 쓸 수 있고, 그림도 그릴 수 있고, 뭘 만들 수도 있고, 책을 만들 수도 있어.

-엄마는 어떤 향수를 만들고 싶어? 난 바람을 담은 향수를 만들고 싶어.

-난 E메이저와 A메이저가 좋아. 그런데 엄마가 좋아하는 곡은 A마이너가 많더라.

-엄마, 엄마는 딱 하나만 물건을 챙기라고 하면 뭘 할거야? 난 당연히 <해리포터>야.

-엄마, 사후세계는 있어? 어떤 걸까?  난 죽음이 무서워. 엄마는 1000살까지 살아야해. 

-엄마, 난 <프라이의 꿈> 가사가 너무 좋아. 특히 이 부분!  <사건의 지평선>의 이 가사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는데, 노래는 좋아. 여전히 잘 모르겠어.

...............

아이는 이렇게 매일 새로운 것을 온 몸으로 받아 들이고, 생각하고 느끼며 자기 세계를 넓혀가고 있다. 이제 만 7세의 삶이다. 

갈 길과 너무 많이 남은 이 아이를 보면서 사실 난 미리 지치기도 한다. 이 아이의 앞날을 축복하고 지지하지만, 이 아이가 앞으로 겪을 수많은 일들과 변하는 세상을 생각하면 마음이 그렇게 무겁고 아플 수가 없다. 부모가 이 세상은 재미있는 곳이고 아름다운 곳이라는 걸 직접 보여주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 하던데, 이런 면에서 난 글러 먹은 셈이다. 디폴트값이 부정적이니.

재이와 아무런 걱정 없이 순수하게 같이 즐기는 시간은 음악을 듣고 함께 연주할 때뿐이 아닌가 싶다. 티끌만큼의 잡념도 없고, 우리 둘은 그저 악보와 멜로디와 감정을 나눌 수 있다. 그건..정말 행복하고 멋진 일이다. 

 

2월이 되었다. 3일째.

재이는 영어를 배우러 가고 남편과 난 도서관. 이 패턴이 나름 고상해 보이기도 하는데, 꽃노래도 한두번이지 좀 지겹기도 하다. 게다가 국립도서관의 평균 연령은 아마도 족히 65세는 될 것 같다. 은퇴한 할아버지들이 특히 많이 보이고, 왕년에 공부 좀 했을 것 같은 포쓰를 보이는 할머니들이 띄엄띄엄 보인다. 10년 후, 20년 후...아마 남편과 나도 저런 모습으로 늙어 있지 않을까 싶은데, 그들이 그닥 재밌어 보이진 않는다.

오늘 이곳에 오며 자꾸 화가 나고 짜증이 나며 입이 앞으로 튀어 나왔다. 왜 그런지 알려고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 건데,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냥 여기 이렇게 앉아 있는 게 못마땅한가 보다. 산으로 들로 뛰쳐나가고 싶은 걸까. 오는 길 한강변에서 본 큰 사이클을 타며 막히는 길 건너로 시원하게 가는 사람이 부러웠던 걸 보면. 

앉아서. 손과 머리를 움직이며, 말로, 글로 무언가를 하는 행위가 지긋지긋하다.가 본심인가? 아니면 지금 계속 질질질질질 미친 듯이 끌고 있는 이놈의 논문 때문인가. 쓰다보니 알겠네. 이놈의 논문 때문인걸. 이 얘기를 할 때 타자 속도가 빨라지고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걸 보니.

역시, 쓰면 알 수 있다. 글의 힘이란!

얼른 쓰고 집어 던져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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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를 누군가 첼로로 연주하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마음이 아프네. 눈물까지 나네.(갱년기로구나. 아무 떄나 마음이 아프고 삶이 가엾고 눈물이 나는 걸 보니)

 

2023년 여름방학. 그녀의 여름방학이 다가오고 처음으로 나의 온전한 여름방학은 금이 갈 예정이다. 사실 방학을 그리 알차게 보내는 유형은 아니었기에, 아이의 방학 때문에 내가 공부를 엄청 못 하게 된다거나 할 건 없을 거다. 그치만 심적으로, 2/3토막이 없어지는 느낌은 심히 당혹스럽다. 그리고 뭔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큰일나겠구나 하는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초1. 그녀는 초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매우 잘, 성공적으로 보냈다. 그 의미는,

-친구들과 담임선생님과 다른 과목의 선생님들과 잘 어울려 지냈고, 베프도 만들어서 흠뻑 정을 주고 있는 모양새이며,

-학업적으로 매우 우수하게, 교내 금상들을 다섯 개나 휩쓸며 똑똑한 아이로 자리매김하였고,

-새로 이사온 동네에서도 잘 적응하고 있으며,

-건강도 이 정도면 양호하게(조금 말랐고, 여전히 피부는 신경쓰이긴 하지만) 잘 지키면서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떠했는가?

2023년 1학기는 보통 정도.

-초반 2월즈음에는 결의를 다지기도 하였다. 내게 다른 때와 비슷하게 사람들이 먼저 관심을 가져 주었고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나는 책임감은 있어서 꺼이꺼이 해내긴 했으나 몸은 지쳐떨어졌다.

-나의 문제는 지속력이다. 하나의 일을 끝내고 났을 때 몸이 방전되고 상해 있다. 생기왕성할 때에는 일주일이면 회복이 되었다. 아니 하루이틀이면. 그런데 이제는 한번 이러고 나면 한 달 정도는 갤갤되고(왜냐면 아이가 있어서 내 마음대로 푹 쉬지 못하기 때문), 그리고 나면 공부 흐름은 뚝 끊기고, 사람은 게을러져서 퍼져 있게 되는 것. 그게 문제다. 내 문제는 명확해졌다.

 

2023년 7월 15일. 딱 반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7월 10일까지 2개의 논문을 투고해야만 했는데, 못했다. 실패.

내 이럴 줄 알았어...하긴 하지만, 혹시나 하기도 했었다. 그냥 매일매일이 혓바늘도 나고 힘들었다로 변명을 해 보지만..글쎄. 하기 싫었던 것 같다. 힘들고 피곤해서. 이런 에너지양을 가지고 굳이 내가 기를 쓰고(아이가 있다보니, 나이가 들다보니 논문 성과를 내려면 나 같은 사람은 '기를 쓰고', '무리를 해야' 가능하다.) 논문 한 편을 써야 되나 싶은 회의가 들더라.

각성할 것. 그냥 나의 일상으로, 루틴으로, 아침에 일어나면 오전 서너시간 집중해서 일을 하자.

어제와 다르게, 젊을 때 습관과 다르게 이제 밤에 일을 하고 더 잘 하는 시기가 지나갔다. 재이가 하교하고 난 후부터 약 여섯 시간 정도를 같이 보내는데, 나는 책임감이 강한 엄마이기 때문에 이 시간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 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필요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머리로, 강하게) (그러나 마음으로, 강하게, 그 시간이 너무 편안하고 즐겁고 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저녁 시간엔 그냥 아무 것도, 아무 생각도 안 하고 퍼질러 앉아 있거나 누워서 쉬고 싶다.) 어쨌든, 나는 이제 잘 자고 난 다음 날의 아침, 아이를 등교 시키고 난 후의 아침이 가장 생산성이 높은 시간이 되었다. 체내 시계가 드디어 바뀐 것이다.

그래서 이제 좀 해 볼까, 살만한데 했는데(6월부터) 떠억하니 여름방학이 다가오고 있다. 새로운 변수. 새로운 시간 조절이 필요하다. 아이는 섬머스쿨로 9시-12시40분 2주, 그 다음 2주는 내가 직접 데리고 다녀야 하는 섬머스쿨 2주 10시-1시가 규칙적인 일과로 잡혀 있다. 그리고 역시나 책임감 강한 엄마는 집에 와서 점심을 먹게 되는 아이를 위해 다양한 식단으로 먹이리라 마음 먹고 있고, 놀아도 좀 더 재밌고 의미있게 놀 수 있도록 아이와 함께 가고 보고 하는 몇몇 개의 프로그램을 열심히 예약해 두었다. 그 의미는, 결국 아이가 집에 오고 난 후의 시간은 산산조각이 나서 내 것으로 쓸 수 없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완전한 집중력을 요하는 일을 해야하는 시간+ 통으로 주어진 시간은,

-첫 2주: 집중력 있게 일해야 하는 시간은- 8시30분(오전)- 12시30분(4시간)이다. 

             이 시간은 그냥 책 보거나 넷플릭스 보거나 이메일 처리, SNS 하는 쉬는 시간이 될 거다.. 지쳐있을 테니까- 밤 10시-12시00분(3시간) / 아주 급한 일이 있다면 이 시간에 공부를 할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 머리를 덜 쓰는 일은 이때 하기로 한다.

  *결국 최소한 4시간, 완전한 집중력이 필요한 일을 하는 시간을 확보하려면 8시30분엔 시작해야 된다는 말이 된다. 이 시간을 놓치면, 다 꽝. 날아간다.

*아, 그런데 화/목 오전 9시-9시50은 수영이 잡혀 있다. 게다가 8월 월/수/금 아파트 단지 안 필라테스는 남편이 안 하려고 하니 내가 해야 할지도 모른다. 환불 불가..-.-

 

-그 다음 2주: 날짜로는 10일인데 남편과 반반 쪼개서 다니는 걸로 하면 좋겠다. 어차피, 난 화/목 수영이 있으니...

월/수/금-나 , 화/목-남편이 라이딩을 맡는다.

그렇다면, 내게 주어지는 통 시간은...

월수금: 10시-12시40분(2시간 40분)------좀 적다.

화/목: 10시30분-3시(4시간 30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방학 때 적어도 5시간은 공부를 집중해서 해야 하는데, 채워지기가 힘들군. 

결국 답은, 아침형 인간인가.... 새벽 시간에 일어나는 걸 해야 시간이 확보될 듯.

이제 재이 픽업하러 갈 시간이라서 생각도 여기서 멈춰야 한다. 이어서 계속............

요즘 J와의 신경전이 좀 피곤하다. 이 아이는 상당히 여자 아이들의 특성(?)을 꽤 많이 가지고 있어서, 나를 좀 짜증나게 만드는 게 있다. 예컨대 내가 가진 것보다 친구들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는 것, 인싸인 아이를 따라하고 싶은 것, 그룹을 지어서 노는 것, 말투에 예민한 것, 씩씩하지 못한 것, 헤어스타일, 옷 등에 관심이 많은 것.

쓰다보니 나도 그런 면이 없는 게 아니었는데 어쩌면 난 "그런" 건 감추거나 드러내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고, 중성화를 요구받으며 자랐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시대에 외동딸로 태어난 나는 사회로부터 "열 아들 부럽지 않은 딸" 하나가 되어야 했다.초,중,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그러기 위해서 남자 아이들이 가진 무덤덤함이나 듬직함, 벌레 따위는 무서워하지 않는 담대함 따위를 부모에게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무거운 짐이 있어도 번쩍 번쩍 들며 무겁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어찌되었든 일곱 살인 내 딸은 본성 그대로 크고 있는데, 이 아이의 섬세한 결을 따라 가는 것이  쉽지 않다. 부인 디스 전문가인 남편 말에 따르면, 나는 감각에는 매우 예민하지만 상대방에게 섬세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게 부모의 역할이 아니라 아이에게 무한 사랑을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말. 이 말에 부담감을 좀 내려놓으려 노력하고는 있는데, 무한 사랑도 쉬운 일은 아니다. 자기반성을 하자면, 내가 피곤에 찌들고, 하는 일이 안 될 때,, 이때가 가장 위험하다. 그때 난 재이에게 어른한테 하듯 지나치게 차갑게 말한다. 감정은 배제되어 있고, 모든 선택과 책임은 네가 지는 것이라는 뉘앙스를 주는 것인데..사실 이건 너무한 화법이다. 아직 일곱살, 만 나이로 6년 2개월밖에 안 산 어린 아이에게 뭘 하자는 건가. 하아-

육아는 내 인생에서 가장 대단한 도전이다. 타인에 대한 무한한 관심, 양보, 배려, 희생.- 아이를 키우면서 계속 연습하고 훈련해야 되는 것들. 아이가 없었으면 저 키워드에 그닥 관심없이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났을 수도 있을거다. 아이에게 감사해야 됨.

 

*난 여전히, 이 세상에는 아이를 키우는 데 적합한 유형의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난 당연히 후자다.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사람에다가, 아이를 키우는 행복감들에 큰 기쁨이나 의미를 찾는 유형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하나님께서는 내게 인간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과 좋은 엄마를 주셔서 아이를 키워나갈 수 있게 하셨다.

아이 컨디션에 따라 내 생활이 묻혀서 가고 있을 때, 도무지 내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아직도, 가끔 상상한다. 만약에 내게 아이가 없었다면  좀 더 예측가능하고, 계획적이고, 구조적으로, 루틴하게, 내 본성대로 살 수 있었겠지......   이것도 나쁘지 않았을텐데...... 

우리 딸이 만약 나중에 "엄마 결혼을 해야할까?", "엄마, 아이를 낳아야 할까?"라고 묻는 일이 생긴다면, "안 해도 되고, 안 낳아도 된다"라고 강력하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자세한 근거 제시와 함께! (그런데 J는 벌써부터 자기는 꼭 결혼을 할 것이고 아이는 딸 둘을 낳을 거라고 한다....Ha!)

 

8월 초부터 쏟아져내리던 폭우와 폭염이 어제부터 가셨다. 8월 23일 '처서'의 마법. 음력 절기는 좀 잘 배우고 이해하고 넘어가야 하는 영역 같다. 8월 25일, 목요일. 가을이라고 치자. 개강까지  D-8. 옷장 정리도 해 놓고, 발표 준비, 수업 준비도 미리 좀 해 놓을 수 있기를. 한국의 가을을 킁킁, 맘껏 즐겨주려고. 더 늙기 전에 말이다. 물론 우리 딸과 함께! 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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