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8. 10. 수요일. 폭우

선배 언니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조문을 하고 왔다. 예전 성내역, 지금은 잠실나루역인가에 내려 아산병원에 가려고 택시를 탔다. 장례식장에 가달라는 말에 기사님이 누가 돌아가셨냐고 묻는다. 친구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답하자, 시어머니요 친정어머니요?라고 묻는다. 흠..이분은 내 친구면 당연히 결혼을 했고, 시어머니가 있을 거라 생각하시는구나.. 혼자 생각하면서 친정어머니라고 말하니, 그럼 마음이 아프겠네요.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그렇게 슬프진 않잖아요. 솔직히.라고 하시며 슬쩍 웃는다. 이분은 장례식장에 간다는 나와 무슨 주제의 대화를 하고 싶어서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의아했다. '그렇죠.'라고 대답했다.

 

몇 년만인지, 5,6년 전? 아니면 더 오래 전에 봤었던 것 같은데. 오랜만에 본 언니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미안했다. 난 언니가 사그러들었다고 멋대로 생각했었는데 언니는 여전히 꼿꼿하고 당당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석사1학기 때 만났던 눈에서 총기가 샘솟았던 박사 언니, 그 모습이 여전히 보였다. 특유의 또랑또랑하고 정확한, 일정한 빠르기의 말투로 어머님의 이야기를 담담히 하는 언니를 보면서 한편 안심이 되었다. 언니가 무너져 우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언니는 내게 진짜 '언니'였던 사람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고민했지만 답은 못 찾았다. 그저 포기하지 않고 버티며 매일매일을 살아갈 수밖에.

한 가지 얻은 교훈이라면, 박사 논문을 쓸 때의 혹은 한창 날아다닐 때의 그 모습으로는 공부할 수 없다는 것.
난 엄마가 되었고 가정이 있고, 우리 선생님처럼 적당히 골고루 다 해야 된다는 것.
그러나 그 적당히도 최선을 다해야만 줄을 타면서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그 예전과는 다른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어릴 때, 젊을 때는 모두 공부를 좋아해서 이 길을 택했고, 스스로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이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결혼을 하면서, 또 가정사 개인사의 일들로 중간에 손을 놓거나 포기를 생각한 사람들이 대다수가 생겼났다. 아이가 아프면 달려가야 하는 건 회사에 다니지 않기에 시간이 많다고 생각들 하는, 공부하는 엄마의 몫이었고, 하루종일 공부와 수업을 하고 나서도 집에 가면 청소를 하고 아이를 돌보고 밥을 준비해야 했다.심지어 선배 언니들은 시부모에게서 정신적 시달림과 각종 요구들을 대놓고 받아야만 하기도 했다. 결혼을 한 경우 남편들은 더 각양각색인 듯한데, 그들 중 진정으로 공부하는 부인을 도와주는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 남자들도 이미 이 한국사회에서 나름의 기득권을 지닌 남성이었기에, 그들이 가진 것을 애써 놓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라고 별 수 있나. 언니들보다 잘나거나 대차지도 못하니...비슷한 처지이지만, 좀 더 버텨보자라고 하는 것뿐이다. 좀 더 버텨보자, 좀 더 버텨보자.어떻게든 뚫고 나가보자 하는 마음이 그나마 아직은, 불씨가 살아남아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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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여러가지 심란한 마음에,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안고서 '우영우'를 봤는데, 오늘 어떻게 된 일인지 더럽게 재미가 없고, 갑자기 튀어나온 이상한 전개에 짜증이 났다. 
비는 다시 거세게 내리는데, 이번엔 대통령은 집에서 나올 수 있으려나. 정말 기상천외한 C급 쇼를 보는 느낌. 이것 역시 짜증이 난다. 윤 대통령이란 사람을 전혀 알진 못하지만(알고 싶지도 않고), 하는 걸 보면, 어찌하여 대통령이 되었으니 자기 인생에서 최대치의 목표는 다 이루었다! 으하하하하! 나머지는 몰라, 내가 날씨를 어떻게 할 수도 있는 게 아니잖아. 환경오염? 그것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전 지구가 다 겪는 일인데 어쩌라고. 뭐 이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어서 생각하면 짜증난다. 설마 이런 식은 아니겠지. 설마..그래도 잘 해보려 노력은.... 

자야겠다. 비가 너무 쏟아지니 걱정이다.

 

 

2년째다.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고,

벌써 귀국 후 맞이하는 두 번째 봄인데 흡사 첫 번째 같다!

피어오르는 꽃들, 봉오리, 파릇한 연녹색의 잎들, 거기서 뛰어노는 너와 나, 우리 가족의 모습이 기대되는 봄이다.

이유도 없이 설렘도 있는 봄이고,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감사한 봄이다.

여전히 깔깔대며 웃고, 여전히 장난칠 수 있는 남편이 있어서 감사하고,

(딸 아이의 마음이 여리고 섬세해서 얘에 비하면 공대생 수준인 내가 잘 이해해 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6년 가까이 건강하고 밝고 똘똘하게 잘 자라나고 있는 딸에게 감사하다.

코로나라는 이상한 상황에서 살면서도 정신 갖추고, 경제적인 것에도 큰 문제 없이 지낼 수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2022년 3월 말까지 잘 버텨왔고, 살아왔음에 감사하다.

잘 가꾸어 나갈 수 있기를.

 

 

 

 

2022년 3월 23일.

4월이 오고 있고, 2022년이라는 숫자는 아직 낯선데 봄꽃은 피려고 준비를 하고 있다.

코로나는 2년이 좀 넘었나... 계속 마스크를 쓰고 살고 있으며, 원격강의는 3학기째에 접어들었다. 나의 선생님은 은퇴를 하셨고, 선생님이 하시던 강의를 맡아서 하고 있다. 전공 교재 중 한 챕터를 맡아서 쓰고 있는데, 다른 훌륭한 선생님에게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3월 말까지 원고를 완성하려고 마음 먹고 있다. 얼른 해야지..

버티고 있는 중이다. 진짜 학자로 살아 남을 것인가 공부를 생계수단으로 삼으며 아이를 키우고 가정을 돌보며 적당히 일하며 살 것인가. 이제는 더 피할 길이 없는 갈림길에 선 것 같다. 올해. 2022년을 그냥저냥 생활인으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면, 아마도 학자라는 업계에서 멀어질 것 같기 때문이다.

끄적이다 버려둔 논문을 다 살리고, 새로운 논문을 생산해 내서 공부하는 사람으로 다시 제자리에 단단히 설 수 있기를.

 J가 어버이날 선물로 자기는 혼자 놀고 엄마에게 공부할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엄마는 공부하는 걸 더 좋아하잖아라고 하면서. 아마도 재이랑 놀면서 엄마도 논문 써야 되는데...라는 말을 많이 해서 그렇게 아이의 머릿속에 각인된 것 같다. 그렇지 않아라고 급히 말했고, 너하고 보내는 시간이 제일 좋지, 공부를 하는 건 엄마의 숙제야라고 말을 했더니 아, 그렇구나 하며 이해하는 듯한 아이. 애 앞에서 일 얘기는 하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자기랑 보내는 시간이 엄마 아빠 역시 최고의 시간이라고...느끼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안한 마음도 있었고.

나는 시간 구걸자다. 팽팽 돌아가는 낮에는 일을 잘 못하고, 주말, 밤, 새벽 시간에 일을 하던 버릇을 애가 일곱살인데 아직도 못 고쳤다. 아침형 인간은 정말 안 되는 것 같고.

 

그나마 효과적인 방법은, 매일 to do list를 잘게 쪼개서 작성하고 지원나가기. 이거 하나인 듯하다. 

올해가 끝나는 12월.

과연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버틸 수 있을까. 이 세계에서.

2023년,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될 때, 나 역시 새로운 장을 펼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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