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여름방학. 그녀의 여름방학이 다가오고 처음으로 나의 온전한 여름방학은 금이 갈 예정이다. 사실 방학을 그리 알차게 보내는 유형은 아니었기에, 아이의 방학 때문에 내가 공부를 엄청 못 하게 된다거나 할 건 없을 거다. 그치만 심적으로, 2/3토막이 없어지는 느낌은 심히 당혹스럽다. 그리고 뭔가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큰일나겠구나 하는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초1. 그녀는 초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매우 잘, 성공적으로 보냈다. 그 의미는,

-친구들과 담임선생님과 다른 과목의 선생님들과 잘 어울려 지냈고, 베프도 만들어서 흠뻑 정을 주고 있는 모양새이며,

-학업적으로 매우 우수하게, 교내 금상들을 다섯 개나 휩쓸며 똑똑한 아이로 자리매김하였고,

-새로 이사온 동네에서도 잘 적응하고 있으며,

-건강도 이 정도면 양호하게(조금 말랐고, 여전히 피부는 신경쓰이긴 하지만) 잘 지키면서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떠했는가?

2023년 1학기는 보통 정도.

-초반 2월즈음에는 결의를 다지기도 하였다. 내게 다른 때와 비슷하게 사람들이 먼저 관심을 가져 주었고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나는 책임감은 있어서 꺼이꺼이 해내긴 했으나 몸은 지쳐떨어졌다.

-나의 문제는 지속력이다. 하나의 일을 끝내고 났을 때 몸이 방전되고 상해 있다. 생기왕성할 때에는 일주일이면 회복이 되었다. 아니 하루이틀이면. 그런데 이제는 한번 이러고 나면 한 달 정도는 갤갤되고(왜냐면 아이가 있어서 내 마음대로 푹 쉬지 못하기 때문), 그리고 나면 공부 흐름은 뚝 끊기고, 사람은 게을러져서 퍼져 있게 되는 것. 그게 문제다. 내 문제는 명확해졌다.

 

2023년 7월 15일. 딱 반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7월 10일까지 2개의 논문을 투고해야만 했는데, 못했다. 실패.

내 이럴 줄 알았어...하긴 하지만, 혹시나 하기도 했었다. 그냥 매일매일이 혓바늘도 나고 힘들었다로 변명을 해 보지만..글쎄. 하기 싫었던 것 같다. 힘들고 피곤해서. 이런 에너지양을 가지고 굳이 내가 기를 쓰고(아이가 있다보니, 나이가 들다보니 논문 성과를 내려면 나 같은 사람은 '기를 쓰고', '무리를 해야' 가능하다.) 논문 한 편을 써야 되나 싶은 회의가 들더라.

각성할 것. 그냥 나의 일상으로, 루틴으로, 아침에 일어나면 오전 서너시간 집중해서 일을 하자.

어제와 다르게, 젊을 때 습관과 다르게 이제 밤에 일을 하고 더 잘 하는 시기가 지나갔다. 재이가 하교하고 난 후부터 약 여섯 시간 정도를 같이 보내는데, 나는 책임감이 강한 엄마이기 때문에 이 시간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 하는 편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필요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머리로, 강하게) (그러나 마음으로, 강하게, 그 시간이 너무 편안하고 즐겁고 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저녁 시간엔 그냥 아무 것도, 아무 생각도 안 하고 퍼질러 앉아 있거나 누워서 쉬고 싶다.) 어쨌든, 나는 이제 잘 자고 난 다음 날의 아침, 아이를 등교 시키고 난 후의 아침이 가장 생산성이 높은 시간이 되었다. 체내 시계가 드디어 바뀐 것이다.

그래서 이제 좀 해 볼까, 살만한데 했는데(6월부터) 떠억하니 여름방학이 다가오고 있다. 새로운 변수. 새로운 시간 조절이 필요하다. 아이는 섬머스쿨로 9시-12시40분 2주, 그 다음 2주는 내가 직접 데리고 다녀야 하는 섬머스쿨 2주 10시-1시가 규칙적인 일과로 잡혀 있다. 그리고 역시나 책임감 강한 엄마는 집에 와서 점심을 먹게 되는 아이를 위해 다양한 식단으로 먹이리라 마음 먹고 있고, 놀아도 좀 더 재밌고 의미있게 놀 수 있도록 아이와 함께 가고 보고 하는 몇몇 개의 프로그램을 열심히 예약해 두었다. 그 의미는, 결국 아이가 집에 오고 난 후의 시간은 산산조각이 나서 내 것으로 쓸 수 없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내게 주어진 완전한 집중력을 요하는 일을 해야하는 시간+ 통으로 주어진 시간은,

-첫 2주: 집중력 있게 일해야 하는 시간은- 8시30분(오전)- 12시30분(4시간)이다. 

             이 시간은 그냥 책 보거나 넷플릭스 보거나 이메일 처리, SNS 하는 쉬는 시간이 될 거다.. 지쳐있을 테니까- 밤 10시-12시00분(3시간) / 아주 급한 일이 있다면 이 시간에 공부를 할 수도 있겠지만 하여튼 머리를 덜 쓰는 일은 이때 하기로 한다.

  *결국 최소한 4시간, 완전한 집중력이 필요한 일을 하는 시간을 확보하려면 8시30분엔 시작해야 된다는 말이 된다. 이 시간을 놓치면, 다 꽝. 날아간다.

*아, 그런데 화/목 오전 9시-9시50은 수영이 잡혀 있다. 게다가 8월 월/수/금 아파트 단지 안 필라테스는 남편이 안 하려고 하니 내가 해야 할지도 모른다. 환불 불가..-.-

 

-그 다음 2주: 날짜로는 10일인데 남편과 반반 쪼개서 다니는 걸로 하면 좋겠다. 어차피, 난 화/목 수영이 있으니...

월/수/금-나 , 화/목-남편이 라이딩을 맡는다.

그렇다면, 내게 주어지는 통 시간은...

월수금: 10시-12시40분(2시간 40분)------좀 적다.

화/목: 10시30분-3시(4시간 30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방학 때 적어도 5시간은 공부를 집중해서 해야 하는데, 채워지기가 힘들군. 

결국 답은, 아침형 인간인가.... 새벽 시간에 일어나는 걸 해야 시간이 확보될 듯.

이제 재이 픽업하러 갈 시간이라서 생각도 여기서 멈춰야 한다. 이어서 계속............

오늘은 예술교육 참관일이었다. 아이가 공부하는 학교에 처음으로 가는 날.  원래 나는 이날에 학회 발표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한 달 전쯤, 하필 이 날이 아이의 수업 참관일인 것을 알고는 죄송하다고 죄송하다고 하면서 학회 참석을 못하게 되었다고 사죄를 하며, 이런 말을 무지 많이 하며, 아이의 첫 번째 수업 참관에 간 거였다.

5교시, 12시40분부터 1시 20분이라는 낯선 시간 대에 맞춰 남편과 함께 아이의 학교로 갔다. 보통 약속 시간에 간당간당하게 가는 남편과 나는 이 날만큼은 늦지 않게, 여유있게 집을 떠났다. 난 안 하던 화장도 했고, 안경을 벗고 렌즈를 꼈다. 미리 입고 갈 원피스에 분무기로 물을 뿌려 걸어놓기도 했다. 어릴 때, 우리 엄마가 학교 운동장으로 걸어들어올 때 참 예뻐서(다른 엄마들과 달리 엄마는 예쁜 옷을 입고 있었고, 아주 날씬했고... 다른 아줌마들과는 좀 달랐다.)  친구들에게 으쓱했던 기억이 떠올라서였다. 난 우리 엄마 재질은 못되지만, 그래도 재이에게 다른 의미로라도 엄마가 온 게 으쓱해질 수 있도록 만들어 주고 싶었다. 외모에 별 신경을 안 쓰는 우석도 이날은 오렌지색 티셔츠를 입었다. 아마도 그는 '젊어 보이는 아빠'가 목표였던 것 같다.ㅎㅎㅎ

학교에 도착해서 교실을 찾아가는데, 재이와 함께 셔틀버스를 타는 S를 복도에서 만났다. 남의 아이도 어찌나 반갑던지! 똘똘이에 야무진 S는 우리에게 예술교육 참관하러 오셨냐면서, 바이올린2반인 재이의 교실로 우리를 직접 안내해주었다. 학교 설명을 해 주며 자그만치 4층까지 앞장 서서 걸어가는 2학년 아이. 귀여워서 웃음이 저절로 났다.  

교실에 들어서는 엄마를 발견한 재이는 크게 '엄마다!'라고 부르더니 좀 상기된 표정이다. 재이가 아이들 중 1번으로 앞에 나와서 연주를 했는데, 재이 말로는 가장 잘하는 순으로 선생님이 제비를 뽑아서 쥐어줬다고....ㅎㅎㅎ 어쩐지 앞의 세 명은 꽤나 연주를 잘하고 뒤로 갈수록 좀 서툴더라니......  나도 다른 엄마들처럼 열심히 비디오를 찍었고, 사진을 찍었다. 연주가 끝난 후엔 브라보를 외치기도 하면서 아이들의 연주회를 한껏 즐겼다. 아이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연주들을 꽤 잘했고, 저는 까불이에요라고 얼굴에 써 있는 남자 아이도 연주하는 특정한 순간에는 한껏 진지한 표정을 짓는 걸 보며 어린이들은 참으로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나는 확실히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더라면 내 모든 걸 다 갈아넣어서 아이들에게 잘해줬을텐데.... 아쉽다.)

재이 순서가 끝나고서는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선생님을 관찰했다. 소심한 아이, 말 한마디 없는 아이가 눈에 띄었고, 그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보였다. 한없이 까부는 밝은 영혼이 보였고, 역시 그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보였다.(그런데 그 엄마는 한없이 어두웠는데...이 매칭은 어떻게 된 걸까??) 아이와 엄마. 이 두 짝은 대개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재이와 우리도 그러겠거니 하면서 살펴봤는데, 중이 제머리 못 깎는다고 잘 알 수는 없었다. 재이의 모습을 통해 나와 남편의 모습을 유추해 볼 뿐이었다.ㅎㅎㅎ

재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활발했고 적극적이었다. 수업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말도 잘했고, 다른 친구에게 뭐라뭐라고 코멘트도 해주고, 나름 조교처럼 선생님을 도와주는 말들도 했다. 남편과 나는 재이가 모범생이리라 예상은 했지만 내심 너무 재미없고 딱딱한 모범생일까봐 걱정하기도 했었는데, 학교에 있는 재이를 보며 그런 걱정은 사라졌다. 게다가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리자, 재이는 착착착 자리 정리를 하더니 우리와 상관없이 다음 수업을 위해 쿨하게 다른 교실로 바삐 떠나갔다. 우와..다 컸네! 쿨하지 못한 나는 재이야~~ 어디로 가는데에~~ 엄마랑 아빠는 그럼 먼저 갈게~~ 이따 만나자~~ 뭐 이런 말들을 재이에게 했던 것 같다.

40분간의 짧은 수업 시간 후 남겨진 남편과 나. 우리는 서로 훗-하고 웃었던 것 같다. 우리 딸이 잘 크고, 잘 지내고 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학교를 나와 우리 둘은 아이의 교복 집에 들려 아이 옷을 하나 주문하고, 점심 때가 훌쩍 지나 배가 고픈 나머지 거기서 가장 가까운 식당에 쑥 들어가서 갈비탕과 냉면을 한그릇씩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맛없었다.-.-)

초1. 첫 번째 참관기 끝. (집에 도착해서 30분쯤 후에 학교 셔틀이 도착. 헉......... 쉬지도 못했음.@@)

이제 약 한 달 뒤면 아이의 여름방학이 시작된다는 사실에 나는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 사립초에 보내면 학원 신경 안 써도 되고, 학교에서 아이 수준에 맞게 잘 키워질거라 너무 믿었던 까닭이다. 

4주간의 여름방학 동안 2주는 Summer 스쿨에 나가긴 하지만, 점심은 안 먹고 온다고 한다. 아..세상에마상에. 9시부터 시작, 12시 10분 하교, 셔틀을 타고 오면 아마도 12시 30분쯤 되겠지. 집에 오자마자 점심을 먹어야 하고, 나는 그걸 준비해야 하는 거다. 매일매일 4주 동안 주말 모드(=아이와 함께 계속 노느라 지치는 모드)로 지내게 생겼다는 생각에, 일평생 처음으로 나의  '소.중.한, 꿀.맛.같.은.' 여름 방학 중 한 달이 날아간다는 사실에, 나는 거의 멘붕 상태가 되었다. 게다가 이 어린 아이는 나만 쳐다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오후 1시부터 잘 때까지... 뭔가를 기대하고 있을 것 같았다.

오늘 세 시간 넘게 온갖 군데 전화를 돌려가며 여름 방학 스케줄을 짜봤다. 태권도, 음악줄넘기, 수영-소그룹/단체 강습,  구립센터 프로그램들, 인라인, 키움센터까지...... 그런데 헉, 사립학교 스케줄과 맞는 건 어디에도 없었다. 방학 특강들은 모두 공립 아이들에 맞춰 있기에 오전에 시작하는 거였다. 이런 걸 하려면 학교 스케줄은 할 수가 없다.

대혼동의 시간. 머리를 쥐어 뜯으며 어떻게 해야 하는 건가 싶고, 이 땅의 모든 일하는 엄마들은 아이를 어떻게 키우란 말인가 분노했다 하면서 그 작은 카페에 앉아 정신적으로 요란법석을 떨었다. 내 연구 시간을 확보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의 의미 있는 여름 방학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둘 다 살아야 해..뭐 이런 마음이었다.

그런 모드로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이 새벽에 결국 정신을 차리고야 말았다.(다행이다. 돌아와서)  내가 지금 뭘 하는 건지, 뭘 위해 이러는 건가 싶었다. 정신을 차리는 데 필요한 특효약은 역시 책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게 대혼동과 갈등 상황에서 벗어나는 방법이구만. 1. 책을 읽는다- 2. 글로 적는다.-3. 머리로 정리한다.)

1/3 정도 읽다가 말았던 1학년 담임 선생님이 지은 재미나고 귀여운 책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거기에 뭔가 있을 것 같아서... 4월의 일지에서, 생각보다 빨리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는 말을 발견했다. 

"우리 아이는 어떤 아이인가요? 아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무서워하는 것, 흥미를 느끼는 것. 두려워하는 것, 기대하고 바라는 것. 아이에 대한 이해는 대화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저녁 아이와 함께 작은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아이의 마음을 한번 살펴봐 주시길 바랍니다." (초등샘 Z, <<오늘 학교 어땠어?>>, p.104.)

재이가 방학 동안 기대하는 건 뭘까, 내가 만약 8세, 초1의 여름방학으로 돌아간다면 뭘 하고 싶을까. 무엇을 하는 것이 만7세의 한여름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될까. 여름방학의 한 달 동안, 이 아이에게 필요한 건 뭘까. 정신을 차리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일 재이와 이야기해 봐야겠다. 그 마음속을 잘 들여다 봐야지.

 

새벽 3시30분. 잘까, 아니면 논문을 쓸까, 아니면 계속 이 책을 읽을까. 새벽에 잠을 안 자고 5시까지 밤을 새우고 지낸 지 3일째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재이 학교 갈 준비를 한 후, 8시 5분에 남편이 재이를 데리고 나가면 식탁을 정리한 후 8시15분부터 10시30분에서 11시까지 자고 일어난다. 이 패턴이 아주 건강한 방식은 아닌데, 모레까지만 유지해 볼까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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