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사실을 기록해야겠다.

기록이 필요하다.

목장 모임에서 2019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는데,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길고 지난한 한해였는데, 구체적으로 잡히지를 않았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휴스턴, 햇빛과 하늘이 가까운 곳에 1년 동안 내 속은 치고박히며 살아왔던 것 같은데, 달, 하루, 시간이 좌르르 빠져나간 것 같았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건 이런 것이다.

40년 넘게 남이 짜놓은 일정에 따라 움직이다가 그게 없어진 진공 같은 이곳에 오니 1년이 뭘 했는지도 모르게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기억나는 건,

6월 미네소타 학회에 갔던 것,

10월 한국에 갔던 것

이곳을 떠나 있던 기억 두 가지.

 

2019.12.29. 일요일 :

 오늘은 대예배 때 영접/구원 간증을 했다. 12월 1일에 영접 모임, 12월 8일에 침례를 받고, 12월 18일 수요 예배 때 간증을 했고, 그때 했던 간증을 대예배 때 다시 한 것이다. 교회에서 무엇을 할 때는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여럿 앞에서 강의를 하거나 학회 발표를 할 때 긴장을 내려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약간의 자만심이다. 이 주제에 대해 내가 가장 많이 고민했다라는 자만심이 자신감을 만든다. 그러나 교회에서 무언가를 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런 자신감, 자만심의 영역이 아니기에 그런 듯. 내 입을 통해서 이야기되는 별 거 아닌 내용들이, 그 누군가, 아주 적어도 좋으니 어떤 이의 마음에 가닿을 수 있기를 바라며 시작했다. 

 

J는 아직도 배변 훈련을 못 끝냈다. 배변을 다 컨트롤 할 수 있으면서도 변기에만은 누기 싫다는 아이. 9월 엄마 생일에, 11월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1월 여행하기 전에 변기에 누겠다면서 약속을 하면서 계속 미루고 있다. 오늘 아침에는 간증 때문에 예배에 늦으면 안 되는데, J는 오줌이 마렵다고 하면서도 변기에서도 안 누고, 기저귀는 하기 싫다고 하며 버텼다. 여러 말로 달래다가 생각해보니 나중에는 결국 약간의 협박조로 아이에게 이야기를 한 것 같다. 그리고 결국엔, 나 혼자 교회에 간다면서 집을 나왔다. 예배를 드리며 내내 J에게 미안했다. 

기다려주는 엄마가 되어야지. 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아이를 윽박지르면 안 되는 일이다. 

 

 

예배 후 부랴부랴 집으로 달려와 멸치볶음을 해서, 남편이 해 놓은 밥과 데워 놓은 국, 고기를 볶아 놓은 것을 다시 데워서 점심을 함께 먹었다. 엄마 생각이 났다. 외출 후 집에 어린 나와 아빠가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나갔다 들어와서 씻지도 못하고 외출한 옷을 입은 그대로 우리 밥을 차려줬었다. 난 그래도 남편이 밥도 해 놓고, 딸 아이는 우선 만두라도 구워서 먹이고 있으니 좀 형편이 나아진 셈이다. 그런데도 이런 상황에서, 남편이 뭐라 하지 않는데도, 난 마음이 영 불편하다. 그리고 이런 마음이 드는 내 자신에게 짜증도 난다. '밥 먹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하도 오랜 시간 혹은 주위에서 '밥은 엄마가 먹인다.'는 걸 봐와서 나도 모르게 세뇌된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12월 20일부터 J는 preschool에 가지 않고, 남편 학교도 휴가다.

긴 holiday. 자그만치 1월 6일에 개학이라니... 

내일은 아이랑 또 뭘 하고 놀까.

9시부터 2시30분까지 가는 preschool이 별 거 아니고 짧다고 생각했는데, 하루종일 붙어 있자니 하루가 참 길다. 

덕분에 살도 빼고 체력도 기르려고 YMCA 등록을 했었는데, 12월엔 겨우 2번인가 3번 갔다. 미국에서도 체육발전기금을 내고 있다.

 

J를 재우고 나니 밤 11시가 다 되었다. 오랜만에 일어나 앉아 있다.

알라딘에서 루시드폴, 이승환 CD와 이성범 선생님이 쓰신 전공 서적 1권과 Susan Sontag의 <<은유로서의 질병>>을 주문했다.

 

 

2020년이 코 앞이라니. 이 비현실적인 숫자를 어찌할꼬.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고, 남편과 잘 지내고, 나 자신의 일과 몸과 마음과 영혼을 챙기는 나만의 리듬을 찾아내야 한다.

휴스턴에서의 삶이 2020년 여름 이후로는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를 일이니...

 

조바심 내지 않고, 쓸데없는 잔가지들에 매달리지 않고, 잔꾀 쓰지 않고 잘 걸어나갈 수 있을까.

기도 제목이다.

 

+J는 기계, 프로그래머, 엔지니어 같은...하여튼 이런 영역에 친숙해질 수 있도록 나도 관심을 가져봐야겠다. 예전에 남편과도 한두 번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프로그래머들은 "프로그램 언어"를 가지고 있으니 어느 나라에 가든 살 수 있다는 것, 최근 여성 프로그래머들의 경우 실력만 있으면 곪고 닳아빠진 남녀차별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J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든, 이 아이가 사는 시대엔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

 

 

며칠 전 로맨틱 코미디라고 불리는 <<로맨스는 별책부록>>을 신나게 봤다.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되어 올라오는 그 드라마를 보는 게, 재이를 어렵게 재우고 난 뒤에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책 중 하나였다.


중간에 두 회와 15회차가 약하긴 했지만, 16부작으로 완결되기까지 훈훈한 드라마였다.

관심없던 이종석이란 배우의 안정된 목소리(한석규 이후 목소리가 들어오는 배우), 연기도 곧잘 하네, 모델 같은 몸.

오랜만에 보는 이나영 씨. 그냥 예쁘다고 하기엔 외계인 같은 독특한 얼굴, 캐릭터에 잘 스며들어 배우들을 구경하는 재미까지 있었다.(이나영 역시 한없이 길다랗고 가느다란 모델 같은 몸.)


끝난 게 아쉬우면서도

로맨스 드라마라는 건 '서로 좋아하고, 달뜨고, 설레고, 세상의 중심은 핑크빛인 우리 둘'이라는 한정된 시간만을 그리고 있으니, 16부작으로 잘 끝냈네 싶다.


일상의 지리멸렬함은 1도 찾아볼 수 없는 로코.

아무도 어지럽히지 않고, 청소도 데이트를 빙자해 하는 모델하우스 같은 집.

설거지가 쌓여 있지 않은 집. 매끼 뭘 해 먹을까 생각하지 않는 집.

세탁기를 돌리지 않고 건조시키지 않아도 되고, 개켜 넣지 않아도 되는 집.

항상 깨끗한 차.

아줌마가 되니 이런 게 어쩔 수 없이 보이고, 그래서 더 보게 된다. 선망의 눈길을 던지며...

이래서 아줌마들이 드라마를 좋아하게 되나보다. 모든 게 꿈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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