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날이 불안할 때는 영화를 규칙적으로, 매일 보는 습관이 있다. 재수할 때 들인 습관인데, 한 시간 반 남짓만 들이면(특히 집에서 비디오로 보면) 적은 돈으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운이 좋으면 긍정적 기운도 받을 수 있고, 또 다시 현실로 돌아가기도 쉬워서 택했던 방법이다.

3일 동안 세 편의 영화를 봤으니, 불안정한가보다.


<1>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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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어른의 경계, 뭘까?

아이나 어른이나 그 층위에서 살아갈 때에는, 나름의 즐거움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살아나간다. 어려움의 차이는 양의 차이일 뿐 결코 질의 차이는 아닌 것 같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놀이터나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며, 니들은 속 편하겠다, 매일매일 무슨 걱정이 있겠니 라는 둥의 얘기는 더 이상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른이나 아이나 갈등 상황에 부딪히며 살아가는 건 같은데, 재밌는 것은 갈등상황에 직면했을 때 이들의 대처 방법이 다르다는 점이다. 어른들은 갈등 상황을 뚫고 나가기보다는 '술', '친구', '취미활동'  등의 외부 활동으로 이 상황을 회피해 나간다. 어찌할 수 없다면서. 어찌보면 아이들보다 회피할 구석이 더 많은 게 어른들이기도 하고...., 그래서 삶이 찌질하기도 하다. 반면 아이들은 (적어도 이 영화에서는) 갈등이 생겼을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생각하고 뛰어든다. 뛰어든 다음? 그 뒷 이야기는 나중에 생각할 일이다.

꿈, 기적

영화 속에 나오는 아이들만큼 바라는 것,
기적이 일어난다면 꼭 이뤄지길 바라는 게 한 가지씩만 있다면
그 사람의 나이가 마흔이든 쉰이든 그는 늙은 어른이 아닐 것이다.
애들의 눈동자는 어른보다 검고 더 크다는 엄마 말대로, 그 어른의 눈동자도 검고 클 것이다.

단순히 물리적인 나이로 아이와 어른을 경계지을 수 없다는 게, 이 영화를 보며 든 생각이다.
꿈, 기적을 품고 있는 자와 놓아버린 자가 '젊은이'와 '늙은이'의 경계선일 것이다.

나이 들어서까지 계속 꿈 꾸며 행동해 나갈 수 있고,
이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이 영화의 2/3 지점에선, 약간의 '애들 로드무비' 식이 되어 좀 늘어지는 감이 있는데, 그래도 재밌었다. <카모메식당>이나 이 영화는 DVD로 갖고 있으면서 가끔씩 꺼내보면 좋겠다. 어디서 파나? 올 연말쯤 또 한번 보고 싶은 영화.

**@광화문 미로스페이스.
   낮 시간에 영화 보고, 따뜻해진 길을 걸으며 자유롭게 얘기하고 웃고, 낮술 한잔까지.
   봄 같았다.

2011. 12. 3. 토요일 EC OG 공연 팸플릿 사진
-격무와 인생사에 꽤 노출되어 있는 두 사람-정아와 내가 최고참이다.(정아야, 있어줘서 고맙다~내년엔 꼭 선배들을 섭외하자꾸나.) 4학년 애들과 대비되는 우리. 쩝.....


세 곡. 무대 위에서의 시간은 순식간에, 연기처럼 지나간다.
단지 공연하는 것만 목적으로 한다면 합창은 허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노래를 시작하기 전, 무대 뒤에서 나누는 서로에 대한 격려,
무대에 올라섰을 때 우리를 향해 비치는 환한 조명,
지휘자와 반주자의 모습과 눈빛, 
리허설 때 좁은 연습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화음.
이런 맛을 못 잊어서 자꾸 합창을 그리워하는 듯하다.



격주 연습이었고, 공연 임박해서는 매 주 연습을 했다.
하루 일을 마치고 저녁에 신촌으로 연습을 하러 가면서, 피곤해 죽을 것 같던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11월엔 잦은 회의와 채점 때문에 연습을 빠질 수밖에 없기도 했고.

단가- '더욱더 사랑해'를 부르던 이대 앞 시장통 길거리.
하늘은 어두웠고, 옆에는 '모텔' 네온 사온이 번쩍였지만
여태껏, 어찌보면 습관처럼 공연 후 불렀던 이 노랫말이 이토록 절절히 다가온 적이 또 있었던가 싶다.
개인이 아니라 EC라는 단체에 대한 사랑은 대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모두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세상 곳곳에서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들을 만나게 된다.
귀가 열려 있어서 감사하다.

김민기란 사람은 어떤 이일까?
맑고 담백한 사람, 심지가 굳은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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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 - 김민기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리키지
높고 뾰죽한 봉우리 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 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텐 그게 전부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오르고 있었던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 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 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 것은 아무것도 아냐
저 위에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늘어지게 한숨 잘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 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거기 부러진 나무 등걸에
걸터 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옷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말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 하면서
주저 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 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 같은 것이 저며 올 때는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구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가는 여기 숲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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