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주 5일>

 

밤에 푹 자고 개운하게 일어난 지 꽤 되었다.

어제도 소포롤로지 CD를 틀어놓고,

진통, 분만에 대해 나만큼은 진지하지 않은 우석을 불러다 호흡 연습을 조금 했다.

그리고 새벽 2시경 잠들었다.

뒤척이다 다시 깬 시간은 4시.

또 뒤척이다 일어나 버린 시간은 4시40분.

 

진통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강도로 오게 될지,

그리고 5분에서 10분 간격으로 사인이 올 때 병원에 오라는데, 그 상황은 어떨지,

그리고 나서 집을 떠나면 분만을 하게 될텐데, 그건 또 어떨지.

생각이 많아진다.

 

분만은 나와 아기의 협업이고, 나-아기-남편의 협업이라기도 한다던데,

사실 남편은 관찰자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자기 몸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니, 그 누가 절절히 체감할 수 있겠나.

경험상, 조부모가 있거나 부모가 아팠거나 해서 간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환자에게 감정이입도 잘 되고 간호도 잘 하던데,

우석은 조부모와의 인연도 없고, 부모님도 건강하시고, 병원/병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으니 마음을 비우고 있어야한다.

기대치를 낮춰놔야지.ㅎㅎ

(대신 그는 아이가 태어나면 아마 살뜰히 잘 보살피고 놀아줄 거라 기대한다...근데 어느 정도 커야 잘할 것 같지, 신생아일 때는 모르겠다.ㅠㅠ)

 

 

 

막달이 되면서 손가락 마디마디가 꺾이지 않고 쑤셔 오는데,

외할머니, 엄마가 약한 부분이 내게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기 때문인 것 같다.

유전의 힘이란.

 

나도 엄마처럼 임신하고 허리가 아팠고, 입덧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외할머니, 엄마처럼 제일 먼저 왼손, 오른손의 엄지 손가락 마디가 아파왔고,

지금은 모든 손가락 관절을 구부릴 수 없을 정도로 뻗뻗하다.

엄마가 나를 낳으면서 '죽을 만큼' 고생을 했다고 하며,

생각없이 말하는 사람들(꼭 주위에 있기 마련인데, 이런 사람들 말은 그리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다. 정말 '별 생각없이 그냥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은 '그러니 너도 고생할지도 모른다'면서 얘기를 하는데...

이 말이 마음에 남아 있는 건 사실이다.

 

물론 난 엄마처럼 20kg 살이 찐 것도 아니고(현재 11~12kg 증가),

해님이가 나처럼 3.9kg의 우량아도 아니니까 나은 조건이지만,

다음 주 금요일에 병원에 가서 확인은 한번 해 볼까보다.

골반 크기라든지, 해님이 크기라든지, 순조롭게 자연분만을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해님이를 만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힘 내야지!

한가로운 일요일이다.

아마 우석과 내가 이렇게 일요일을 한가롭게 보내는 것도 이제 몇 주 안 남았겠지.

점심을 나란히 앉아서 먹으며, 어제 못본 '디어마이프렌즈'를 재방송으로 봤다.

그는 목이 메어 밥이 잘 안 넘어간다, 나는 훌쩍거리면서 휴지를 달라고 하며 코를 푸는 등, 사는 게 뭔가 싶다는 둥...하면서

대낮에 드라마를 봤다.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일일까.

지속해서, 계속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

웃었다가 울었다가,

지루해하다가 흥분했다가,

그러면서 나이를 먹어가고,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또 지속해서 살아가고, 웃고, 울고, 지루해하고, 흥분도 가끔하고...반복.

언제가 끝인지 모른 채, 뭐가 완결되는 것인지, 완주하는 것인지 알 수 없으면서도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삶'이란 건 참으로 신기하다.

'삶'이라는 것 자체에 어떤 힘이 있는 것일까. 그 시간과 공간, 환경이 인간을 이끌고 가는 건 아닐지.

인간의 의지라는 것만으로는 이 정체 모호한 '삶'이라는 걸 지속해서 이끌고 갈 수 없을 것 같은데.

 

 

해님이, - 36주 5일.

말 그대로 '만삭'이 되면서 몸은 눈에 띄게 무거워졌다.

이상하게도 발뒤꿈치부터 지릿지릿 쥐가 나는 증세가 반복되고,

손발은 꽤 부어서 반지가 들어가지 않는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뒤뚱뒤뚱.

임신 전보다 11kg이 늘었으니 허리나 다리도 버티는 게 쉽지는 않을 거다.

그동안 너무 게을리 했다 싶어서 아침에 한 시간 조금 넘게 요가와 호흡 연습을 했다.

 

어제부터 여름 날씨다. 낮 기온이 26~27도나 된다.

해님이가 초여름 아기라는 사실이 체감되고 있다.

지난 주에 이어서 해님이 침구를 빨아서 널어 놓았다.

우석도 빨래를 널면서 귀엽다고 흐뭇하게 웃는다.

함께 사는 사람이 참 귀엽다.

우리는 지금도 중년 나이이긴 하지만, 더 나이가 들어서도 이렇게 서로를 귀여워하면서 지낼 것 같다.

 

출산이 다가오면서 마음이 분주하다.

해님이가 언제 나올지 모르니......

아마도 즉흥적이고 돌발적인 상황이 일어나는 생활에 익숙지 않다보니 내가 더 이러는 게 아닐지.

내 생활은 16주, 2월에 짜 놓은 수업계획서대로 딱 들어맞게 돌아가고, 그 이후엔 성적처리를 하고, 두 달 정도는 방학.

이게 주기적으로 돌아가는 삶이었는데....

아기가 생기면 돌발상황이 많아지고, 쪽으로 시간을 내어서 짬짬이 일을 해야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다들 말하는데..

적응해 나갈 수 있을까.

 

아직 수업이 두세 번 남아 있고, 시험 문제를 미리 내놓고, 조교에게 감독을 부탁해 놔야 한다.

5월 말까지 연구제안서 쓰는 것도 어느 정도 손 봐서 H에게 넘겨야 마음이 편할 것 같고.

 

또..출산 당일 준비도, 호흡이나 운동, 정신력 강화? 같은...준비도 해 놔야 하고.

그동안 요가도 했고 출산 교실도 다니긴 했는데,

연습을 그리 잘 해 놓은 편은 아니라 마음이 급해진다.

 

해님이 목욕용품, 수유 관련된 용품, 기저귀 등은 산후조리원 들어가서

해님이 상황과 내 상황을 보면서 결정해야 될 일이니 일단 머릿속에서 삭제.

아, 흑백 모빌?/ 해님이 모빌은 하나 사놔야겠다.

 

그리고 마지막 숙제.

30일까지 논문 투고...할 수 있을까.

그래도 하나 마무리 짓고 출산하면 마음이 편할텐데..

하는 데까지 해 봐야지.

 

오늘 밤엔 기도하고 자야지.

 

오늘 우석과 함께 병원에 갔다.

사람이 무척 많아서 30분 정도를 기다렸고(임산부들은 연휴가 있어도 어디를 안 가나보다.),

초음파로 해님이 머리 모양을 봤고, 심장 박동 소리도 들었다.

그리고 양수의 양도 적당하다는 말을 듣고 왔다. 

내 체구가 작은 편이고, 배도 다른 사람에 비하면 그리 나온 게 아닌 것 같아서 양수의 양이 부족하면 어쩌나 약간 걱정되기도 했었는데,

이 말을 듣고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데 진료 시간은 다 합쳐서 1분 정도?

해님이가 아무 문제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다행이지만,(해님이는 약 2.4kg 정도라고 한다.// 반면 난 임신 전보다 10kg이 늘었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진료 시간은 너무 짧아서 약간 허탈? 허무한 채 우석과 나왔다.

 

 

다다음 주부터는 내진을 하고, 분만에 대해 얘기하게 될 거라고 한다.

여건이 된다면 자연 분만을 할 생각이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제왕절개를 해야겠지.

출산이라는 게 순리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니겠나 싶다.

하나님이 여성을 창조하실 때, 다 알아서 장치를 해놨겠지 싶고.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골반 벌리기나 요가, 호흡법을 좀 더 적극적으로 연습해 놓아야겠다.

'노산'에 해당하긴 하지만,

그만큼 정신력이라든지 마인드컨트롤 같은 능력은 나이에 비례하는 거니까...

침착하게만 하면 출산도 잘해 낼 수 있을 것 같다.

 

 

 

병원 방문은 좀 허무했지만,

남산 공원에 가서 점심을 먹고, 공원을 산책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오랜만에 초록으로 가득한 5월을 봤고, 기분 좋은 햇빛과 바람을 쐬며 걸었다.

공기에 실려 있는 꽃 향기도 맡고.

점심을 먹으면서, 우석과 부모님도 한번 모시고 오면 좋을 것 같고, 나중에 우리 해님이와도 종종 오자는 얘기를 했다.

 

 

특히 공부와 일로 지쳐 있는 우석에게 병원에 매번 같이 가자고 하는 게 마음 한 편으로는 좀 미안한 감이 있었는데(머리로는 전혀 미안한 일이 아니고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우석도 이 장소를 마음에 들어 했고, 기분 전환도 된 것 같아서 좋았다.

그가 행복하고 좀 더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시간과 일에 쫓기면서도 잘 내색하지 않고 나와 해님이, 양가 부모님,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하는 우석에게 고맙다.

(나라면 그렇게 못했을 거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내가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고 결단을 내린 결정적인 계기는,

이 사람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고, 내가 옆에 있으면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땐 무슨 자신감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나 모르겠다.

좀 더 배려하는 마음과 행동이 있어야 하는 건 분명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우석과 해님)을 위해,

좀 더 '좋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좀 더 좋은 인간이 되게 해 주세요.'-평생의 기도 제목이다.

 

 

 

+종합비타민(임신 후기용)과 칼슘제를 샀음. 68000원. 진료비 약 9만 원.

 - 쏠쏠히, 지속적으로 돈이 들어가는 걸 보며,

   돈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뭐 이런 생각도 잠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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