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벚꽃이 흐드러진 날이다. 거실 창으로 아이 방의 창으로 꽃동산이다.

다음 주에는 남편 생일이 있고, 그의 생일은 여전히 나에겐 즐거운 날이다.

코로나가 어떻든, 주위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든, 

나와 남편과 아이. 우리 세 식구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이 작은 세계 안에서는 평안하고 따뜻하다.

문제는 이 세계에서 약간 벗어나 모두가 잠든 새벽이면 찾아온다.

오늘의 모든 일과를 다 끝내고, 오늘 처음으로 이렇게 책상에 앉아 있는 이 시간. 혹은 그냥 자자 하고 침대에 눕는 시간이 되면, 내 일들..쌓여 있는, 해야 하는, 그러나 뭘 정확히 어느 지점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것들과 대면하게 된다. 그리고 조급해지고 불안해진다. 나를 위한 루틴은 없다는 사실과 시간이 가고 있다는 것과 이렇게 다음 주 평일이 되면 수업하기에 급급해서 떠내려가지는 않을까. 

모든 것이 중요한데, 이 균형을 어떻게 맞추어 나가야 하는지 2022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건 여전하다. 그리고 헤메고 있는 나 역시 여전하다. 아이는 이제 일곱 살이 되었고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될텐데. 그리고 난 이제 한국에 와 있고, 이런 생활을 한 지 2년차인데. 어떡하나 어떡하나. 멀티에 능하지 못한 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을 버려야 하나를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되는 시간.

자잘한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결론... 사람은 안 바뀐다는 결론.

쌍둥이를 키우고 있는 후배의 생각을 엿보다가, 내가 어느덧 육아 6년차가 되어 가고 있고, 예전보다는 이 세팅에 익숙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고, 성장해 나가듯이 엄마들도 같이 변화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과 같은 나를 되찾으려는? 움직임들- 정리정돈이 되어 있어야 하고, 밤을 새서 집중적으로 일을 해내고, 감정이 풍부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고.... -은 처음부터 잘못된 설정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집에 사람이 늘었고, 그 사람은 나의 아이인데, 어떻게 이전의 나와 똑같은, 나를 찾는답시고, 나를 주장하려 했단 말인가.

어리석었다.

나도 아이처럼 성장하고 진화해 나가야 한다.

이 아이가 하루하루, 매월, 매년 모습이 다르게, 사랑스럽고 똑똑함을 장착하며 커나가듯이,

엄마인 나도 매월,매년의 모습이 이 아이와 보조를 맞춰 엄마다운 안정감과 따뜻함을 장착해 나가고, 그러면서 나의 일을 현명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지속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진화'를 경험해야 한다. 그래야 너와 내가, 우리가 잘 살 수 있다는 것.

왜 이제야 알았을까.

이전 모습 그대로 버티는 것이 다가 아니고, 이전 모습으로 돌아갈래도 잘못된 설정이다.엄마는 진화 중. 네가 자라나는 것처럼 나도..., 진행해 나가볼게.

 

가족이 둘러 앉아 저녁 식사를 같이 하며, 하루 있었던 일들, 생각한 것들, 느낀 것들을 이야기하는 일. 그리고 식사가 끝나면 맛있는 후식을 먹고, 식사 준비를 하지 않은 사람이 뒷정리를 하고...


가족 드라마의 전형적인 모습, 어느 가정에서나 이렇게 저녁 시간을 보낼 것만 같다고 쉽게 생각하는 그림. 나는 이런 저녁 식사 시간을 가진 기억이 별로 없다. 부모님의 식사 속도는 매우 빠른 편이어서 식사 준비 시간에 비해 음식이 먹어 없어지는 시간이 너무 빨라 '식사'라는 행위가 참 허무하다고 생각되기 일쑤였다. 혹은 내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빠의 긴 연설/강의 같은 독화술로 식사 시간이 채워지거나였다. 아, 간혹 두 분의 싸움도 식사 시간에 발생될 때가 있었다.


결혼을 해서 나도 가정을 이루었고, 내가 만든 가정에서도 이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부엌 일에 익숙지 않은 나도 한몫, 늘 시간이 부족해서 저녁 식사 후에는 무언가를 '빨리, 어서' 해야만 하는 그도 한몫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생기고 나서부턴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정말 드라마에 나올 법한 이야기로 되어 버렸다. 우리 아이는 먹성이 좋은 아이가 아니었고, 나는(때론 그도) 아이를 달래고 먹이느라, 그는 박사 2년차를 보내느라 우리의 저녁 식사 시간은 그저, 배고파서 먹는, 따뜻한 시간이 아니기에 나의 노동력을 들이고 싶지 않게 되는... 뭐 그렇게 되어 버렸다.


2019년, 2월을 맞이하고 있다.

1월이 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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